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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연구에서 시중 생리대 29종 모두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소식은 많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일부는 “유기농”이라는 라벨을 달고도 세포 독성이 확인되면서 충격이 더했다. 식약처의 한 공무원으로서 이번 사안을 바라보며, 국민의 안일한 인식과 제도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유기농에 대한 막연한 신뢰

많은 소비자들은 “유기농”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자동으로 안전하다고 여긴다. 문제는 그 ‘유기농’이 커버에만 해당되는지, 흡수체까지 적용되는지조차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흡수체가 SAP와 합성섬유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겉에 유기농 커버가 씌워져 있으면 소비자는 안심한다. 국민의 보편적 정서 속에서 ‘유기농=안전’이라는 단순화된 믿음이 자리 잡은 것이 현실이다.

안전한 생리대의 기준

안전한 생리대란 단순히 흡수력이 뛰어난 제품이 아니라, 장기간 피부와 점막에 닿아도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최소한으로 노출하는 제품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커버뿐 아니라 흡수체까지 유기농 순면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커버와 흡수체를 잇는 접착제, 흡수체 내부에 포함된 고분자 물질(SAP) 등도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결국 “안전한 생리대”의 기준은 소재·제조공정·검증 방식 모두를 아우르는 종합적 개념이어야 한다.

왜 제도 개편은 어려운가

하지만 제도를 개편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첫째, 국제적으로도 미세플라스틱과 SAP 사용에 대한 장기적 위해성 연구가 아직 축적되지 않았다. 과학적 근거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면 업계 반발과 국제 기준 충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둘째, 국내 생리대 시장은 대부분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이 함께 형성하고 있는데, 원가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기준을 상향하면 소비자가 감당해야 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셋째, 규제는 ‘과학적 합의’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아직 인체 축적 및 독성 연구가 불충분한 탓에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다.

소비자와 제도의 공동 책임

정부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하지만 소비자 역시 ‘유기농’이라는 단어만 보고 선택하는 안일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도는 과학적 증거가 쌓여야 바뀌고, 규제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강화된다. 소비자가 더 적극적으로 정보에 관심을 가지고, 기업에 투명성을 요구해야 제도 개편의 동력이 생긴다.

결론: 안전을 위해 필요한 시선 전환

생리대는 단순한 위생용품이 아니라 국민 건강과 직결된 필수품이다. 이번 연구는 우리 모두에게 경고 신호다. 안전한 생리대는 ‘겉이 유기농’이 아니라, 속까지 안전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는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라는 두 조건이 충족돼야 움직인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고, 정부가 과학적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해야만 진정한 안전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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